연금경제

오를 자산 예측하지 말고 25%씩…연금계좌 ‘영구포트폴리오’ 운용하는 방법

식·장기채권·금·현금성 자산 ETF 4종으로 구현…비중이 15~35% 벗어나면 리밸런싱

홍태준 기자

연금계좌를 운용하다 보면 매번 비슷한 고민에 부딪힙니다. 주식시장이 좋을 때는 주식을 더 담아야 할 것 같고, 금값이 오르면 금을 사야 할 것 같습니다.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 채권에도 눈길이 갑니다.

하지만 연금 투자는 1, 2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주식과 채권, 금 가운데 무엇이 가장 많이 오를지 미리 맞히기는 어렵습니다. 투자할 때마다 다음 시장을 예측해야 한다면 장기간 같은 원칙을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 대표적인 자산배분 전략 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투자 저술가 해리 브라운(Harry Browne)이 제안한 ‘영구포트폴리오(Permanent Portfolio)’입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주식·장기채권·금·현금성 자산에 25%씩 똑같이 나누어 투자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자산에 미래를 걸기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움직이는 네 자산을 함께 보유하자는 접근입니다.

 

무엇이 오를지 맞히기보다, 네 가지 자산의 역할을 나눈다

해리 브라운이 제시한 원형 포트폴리오는 주식 25%, 장기채 25%, 금 25%, 현금 또는 단기채 25%입니다.

각 자산이 맡는 역할도 다릅니다. 주식은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 이익이 늘어나는 시기에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장기채는 물가와 금리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환경에서, 금은 인플레이션과 화폐가치 하락 국면에서 역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현금이나 단기채는 경기 침체나 긴축 국면에서 포트폴리오의 완충제 역할을 맡습니다.

핵심은 네 개의 자산이 항상 함께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자산을 함께 보유함으로써 어느 한 자산에 포트폴리오 전체가 좌우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구포트폴리오는 가장 높은 수익률을 노리는 전략이라기보다 경제 상황을 정확하게 맞히지 못하더라도 투자 원칙을 유지하기 위한 자산배분 전략에 가깝습니다.

 

국내 상장 ETF 네 개로 구성한 ‘응용형 영구포트폴리오’

그렇다면 국내 연금계좌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영구포트폴리오의 네 가지 역할을 국내 상장 ETF로 치환한 응용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원형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각 자산이 맡는 역할을 기준으로 국내 상장 ETF를 대응시켰습니다.

국내 상장 ETF를 활용한 영구포트폴리오 응용 예시 | 그래픽: 연금경제
국내 상장 ETF를 활용한 영구포트폴리오 응용 예시 | 그래픽: 연금경제

먼저 주식 자산에는 ‘RISE 버크셔포트폴리오TOP10’을 활용했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와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 포트폴리오 상위 종목에 투자하는 ETF입니다. 다만 미국 주식시장 전체에 폭넓게 투자하는 상품은 아니기 때문에 원형 영구포트폴리오보다 특정 기업에 대한 집중도가 높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장기채에는 ‘KODEX 장기종합채권(AA-이상)액티브’를 택했습니다. 신용등급 AA- 이상, 만기 3년을 초과하는 국내 원화채권을 대상으로 하는 ‘KAP 한국장기종합채권지수’를 추종합니다. 미국 장기채를 사용하는 원형과 달리 국내 원화채권에 투자하며, 국고채뿐 아니라 공사채와 우량 회사채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금에는 ‘ACE KRX금현물’을 담았습니다. ‘KRX 금현물지수’를 기초지수로 삼아 금 현물 가격의 움직임에 투자하는 상품입니다.

마지막으로 원형의 현금 역할에는 ‘RISE 머니마켓액티브’를 넣었습니다. 주로 3개월 이내의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하며, 단기 채권과 기업어음(CP), 현금성 자산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ETF입니다. 이번 조합에서는 가격 변동을 상대적으로 낮추면서 다른 자산의 비중이 크게 움직였을 때 리밸런싱에 활용할 현금성 자산의 역할로 배치했습니다. 다만 현금이나 예금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이번 조합은 해리 브라운의 영구포트폴리오를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닙니다. 주식·장기채·금·현금성 자산이라는 네 가지 역할을 국내 상장 ETF로 재해석한 응용형 포트폴리오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영구포트폴리오 예시 ETF 4종의 공통기간 성과 비교(월별 25% 동일비중 가정) | 그래픽: 연금경제
영구포트폴리오 예시 ETF 4종의 공통기간 성과 비교(월별 25% 동일비중 가정) | 그래픽: 연금경제

 

영구포트폴리오의 핵심은 ‘무엇을 살까’보다 ‘어떻게 되돌릴까’

네 자산의 구성을 마쳤다면 이후의 핵심은 새로운 상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처음 정한 비중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입니다.

영구포트폴리오는 매년 정해진 날짜마다 반드시 비중을 기계적으로 맞추는 방식은 아닙니다. 해리 브라운은 포트폴리오를 1년에 한 번 정도 점검하되, 네 자산이 모두 전체 자산의 15~35% 범위 안에 있다면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반면 어느 한 자산이라도 35%를 넘거나 15% 아래로 내려가면 네 자산을 다시 각각 25% 수준으로 되돌립니다.
 

영구포트폴리오의 리밸런싱 원칙 | 그래픽: 연금경제
영구포트폴리오의 리밸런싱 원칙 | 그래픽: 연금경제

가령 시간이 지나 전체 자산이 1,200만 원이 됐는데 주식이 432만 원까지 늘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럼 주식의 비중은 전체 포트폴리오의 36%입니다. 이때 네 자산의 목표 금액은 다시 1,200만원의 25%인 각각 300만 원입니다. 주식에서 목표금액을 넘어선 132만 원을 덜어내고, 비중이 낮아진 채권·금·달러·현금성 자산을 채워 넣어 다시 25%씩 맞추는 방식입니다.

적립식으로 연금을 운용하고 있다면 반드시 기존 자산을 먼저 매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매달 새로 들어오는 납입금을 비중이 가장 낮아진 자산에 우선 배분하면서 목표 비중에 가까워지도록 관리하는 방법도 좋은 대안입니다. 거래 횟수를 줄이면서 자연스럽게 리밸런싱하는 전략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장 전망에 따라 기준을 계속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주식이 많이 올랐다고 주식 비중을 50%로 늘리고, 금값이 오른다고 금을 추가하는 식으로 운용한다면 더 이상 포트폴리오의 원칙을 지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 전략에서 25%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처음 정한 자산배분 규칙을 장기간 지키는 것입니다.

 

안정적으로 보인다고 손실이 없는 포트폴리오는 아니다

영구포트폴리오에도 분명한 약점이 있습니다. 주식이 장기간 강세를 보일 때 주식 비중이 25%에 불과한 영구포트폴리오는 주식 중심 포트폴리오보다 수익률이 낮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하면 장기채 가격이 하락할 수 있고, 금 역시 시기에 따라 큰 가격 변동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번 응용 사례에서 활용한 ’ACE KRX금현물’ 역시 국제 금 가격만을 그대로 따라가는 상품은 아닙니다. KRX 금시장의 국내 금 가격을 추종하기 때문에 국제 금 시세와 원·달러 환율, 국내 수급 등의 영향으로 국제 금 시세와의 괴리가 커질 수 있습니다. 현금성 자산 역할로 배치한 ‘RISE 머니마켓액티브’ 역시 예금이나 현금 자체는 아닙니다. 단기금융상품과 단기채권 등에 투자하는 ETF인 만큼 시장가격이 움직일 수 있고, 투자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도 아닙니다.

따라서 영구포트폴리오를 ‘손실이 나지 않는 포트폴리오’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핵심은 손실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닌, 한 시장의 방향에 전체 노후자산을 투자하지 않고,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자산에 위험을 분산하는 것입니다.

연금저축이나 IRP에서 실제로 운용하려면 매수 전, 자신이 이용하는 금융회사의 상품 편입 가능 여부와 퇴직연금 위험자산 분류, 그리고 투자한도를 확인해야 합니다.

 

영구포트폴리오를 접했다고 해서 곧바로 네 상품부터 매수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현재 가지고 있는 연금자산을 주식·채권·금·현금성 자산으로 분류해 보겠습니다. 생각보다 어느 한 자산에 많은 돈이 몰려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아예 빠져 있는 부분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다음, 주식 25%, 채권 25%, 금 25%, 현금성 자산 25%라는 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강세장에서 주식 투자자보다 덜 벌더라도 견딜 수 있어야 하고, 특정 자산이 크게 하락했을 때 정해둔 기준에 따라 다시 비중을 채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금에서 중요한 것은 한 해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일만이 아닙니다. 수십 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지켜낼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무엇이 오를지 알 수 없다면, 적어도 어느 하나에 전부를 투자하지 않는 구조부터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홍태준 기자askhongp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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